'말차 초코 식빵' 님을 납치 후 신문한 내용을 정리하였다.
이후로는 말차 초코 식빵을 '말초'로 줄인다.
관련글 [쀼 납치단 2026 - 02, 두 번째 납치도 시작합니다 (https://azzinlog.blogspot.com/2026/01/2026-02.html)]
아줌마를 좋아한다고? '아줌마'의 기준은? 상대적인 것인가, 아님 특정 시기가 있나?:
마망력, 그것인 것 같다. 한마디로 정의하자면 마망력이 좀 있어야 한다.
결혼이나 자녀 유무가 곧바로 마망력을 만드는 건 아니다. 하지만 대체적으로 그 나잇대에서 느껴지는 특유의 에너지가 있다.
마망력?:
단편적으로 설명하면 일본 애니메이션 <케로로>의 '우주 엄마' 같은 느낌.
약간 주책스럽고 뻔뻔하고 좀 그런 거 있잖아. 그렇다고 해서 본인의 페미닌함을 잃지 않는 그런 걸 좋아한다.
언제부터 아줌마를 좋아했나? 그 기원은?:
나 그거 되게 열심히 생각해 봤다. 중학교 때였다. 남들은 다 빅뱅, 소녀시대, 원더걸스일 때 나는 그, 드라마 <천추태후>를 아나? 거기의 채시라를 너무 좋아해서 시간표에 혼자 아줌마 사진을 붙였다.
아줌마라는 표현에서 더 디테일하게 들어가 보자. 어떤 사람을 좋아하는가?:
'아줌마'가 필수조건인 건 아니다. 내가 좋아하는 여성상이 있고 그 안에 아줌마가 있는 것.
자기가 좋아하는 게 명확하고, 말이 통하며(마가MAGA 여성과는 친할 수 없음), 자기 삶을 재밌게 만들려고 노력하는 시스 여성이 전제다.
이 조건을 다 적용하면 남는 사람이 별로 없다.
일례로 어떤 분과 처음 얘기를 해 봤을 때도 느낀 건데, 같은 여성으로 살아온 시기가 있으니까 그 만큼은 말이 통한다. 하지만 일정 부분은 또 세대 차이일 수도 있는 등 대화가 안 통하는 부분도 있거든. 그러면 그녀가 보인 부분 중 나랑 맞는 부분만 가지고 가는 거지.
맞는 부분과 맞지 않는 부분이 혼재되어 있는 사람이라면, 일부라고 한다면 맞지 않는 부분에 대해서 어느 정도 흐린눈을 할 수 있는 거다. 하지만 그 사람의 전체적인 정체성이 내가 감당할 수 없는 선을 넘어 있다면 안 되는 셈.
이런 식으로 골고루 다 정리하고, 여기에 또 아줌마를 적용하게 되면, 그렇게 필터링 된 사람이 아줌마라면 그게 바로 최상급 아줌마다.
지금 듣다가 느낀 건데 질문을 받고서 생각을 시작한 게 아니라 평소에 생각 많이 해 봤던 걸 대답하는 느낌이다.:
되게 질문을 많이 받았다. 아줌마를 왜 좋아하냐고. 그래서인 듯.
흔치 않은 취향이긴 하지. 하지만 밝히지 않을 뿐이지 많은 취향일 것 같긴 하다. 깨닫지 못하고 인정하지 못하는 거지.
그래, 입덕부정기. 어느 순간이 되면 자기가 좋아했던 연예인들 배우들 이렇게 정리를 해 보잖아. 그러면 얘는 40대 이상들밖에 없어. 그러면 이제 그때 깨닫는 거다. 인정을 해야 되는데 인정을 안 하고.
아줌마의 무엇에 꽂히는지를 한 단어로 표현해 본다면?:
철딱서니 없는 게 최고다. 그게 제일 귀엽다.
이 상황에서 대체 왜 저러는지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할 수 있어. 예상을 벗어나는 어떤 행동을 하면 굉장히 내게는 당황스럽고, 머리가 복잡해지면서, 그런 경우가 있다.
마치 익스트림 스포츠처럼?:
익스트림 스포츠까진 아니고. 궤적이 음흉한 탁구공 본 느낌.
본인을 SM, 또는 SMer로 인식하고 있는가?:
그렇다.
바닐라 연인을 만나 봤지만, 결국 지금의 마님을 만나며 안정되었다. 마님은 본격 '에세머'는 아니지만 내 이런 면을 배려해주고 맞춰주려 노력하고, 또 최근에는 같이 줄(본디지)도 배운다.
에셈이란 게 어려운 게 '내가 에세머다' 하고 정체성을 선언한다고 끝나는 게 아니라 항상 짝궁이 있어야 한다. 행위로 정체성이 성립하는 느낌. 나도 운 좋게 스펙트럼이 넓은 짝궁이 있어서 나랑 맞춰주니 정리를 할 수 있게 된 것 같다.
좋다. 너무 잘됐다. 그런 사람 만나기 쉽지 않은데.:
그렇다. 은근히 레즈비언과 에세머의 교집합이기가 쉽지 않다. 많지 않다. '에세머면서 펨투펨'은 많은데 '레즈비언이면서 에세머'가 많지 않은 느낌.
줄 배우러 가서도 들었다. 레즈비언 커플이 함께 줄 배우러 온 건 처음이라더라. 이게 왜 그럴까 하는 질문을 자주 받거든. 얼마 전 어떤 분도 '왜죠? 왜 레즈비언들은 에세머가 없는 것 같죠?'라고 묻기도 했다.
내가 집단을 대표할 순 없다는 걸 전제하고: 레즈비언들은 정상성을 추구하려는 강박이 있다. 그래서 결혼하고 가정을 꾸리고, 이런 부분에 좀 더 집중을 하지 변태짓에까지 쓸 기력이 없단 말이야. 그리고, 여자들은 돈이 없어. 에셈에셈 하기 위해 투자해야 할 비용들이 만만찮다.
그렇군. 레즈비언도 많이 봤고 에세머도 많이 봤지만 레즈비언이면서 에세머인 사람은 본 기억이 많지 않다.
한편 바이섹슈얼은 한 트럭이다. 내 생각이지만, 바이섹슈얼은 성별이 상관이 없으니까 곧바로 에셈을 비롯한 다른 취향으로 접근할 수 있지만, 레즈비언은 성별이 중요하기에 이와 관련한 일상을 먼저 처리하느라 시간을 보내게 되는 게 아닐까. 그러다가 시간이 지나면 일상이 정리되고 에셈에도 접근하게 되기도 하겠지만, 시간이 걸리다 보니 그 전에 헤어지거나 하는 등의 일로 비율이 적어지는 것 같다. 정상성을 추구하는 것. 에셈은 일단 나중 일인 거야.
(이후 한동안 말초 님과 상관없는 이야기로 흐른 부분은 생략한다)
우리나라는 그냥 탑이 없는 것 같다. 일제강점기 때 다 죽은 거지.
독립운동하다가?:
유전자가 끊기고 바텀스런 남자밖에 안 남은 거지.
(어떤 게시판의 이야길 하며) 여기도 펨섭들은 많은데, 펨돔도 많지 않다.
바텀 강국. 수출해야 해.
정체화 과정과 관련한 질문이다. 두 종류로 나눠 보자. 어떤 욕구를 먼저 느끼고 나중에 그게 에셈이라는 거였구나 하고 접근하는 사람이 있고, 에셈과 관련한 자료나 단어를 먼저 접하고 나도 한번 해볼까 하며 거꾸로 오는 사람이 있다고 생각한다. 본인은 어느 쪽인 거 같나?:
둘 다인 것 같다.
성인이 된 후 정체화했다. 이미 '정상성'에서 벗어난 레즈비언 정체성을 확립한 후였고, 에셈에 대해서는 퀴어 동아리 운영진 등을 거치며 인지는 하고 있었다. 이후 매체(BL/GL)를 통해 '하고 싶다'는 생각으로 번졌고, 안정감을 찾고 싶어 정체화했다.
그 과정에서 당황이나 혼란스러움은 없었나?:
정의를 내릴 때는 혼란스럽지 않았는데, 짝꿍을 구해야 하는 게 필수적인 행위라는 걸 알았을 때 조금 힘들었다.
떡잎도 맞아야 하고, 성향의 깊은 정도도 맞아야 하거든. 불협화음이 일어날 수 있잖아.
환상의 짝꿍을 찾는 것도 힘들고, 만약에 안 맞는 사람이더라도 그걸 어디까지 견딜 수 있느냐 고민을 해야 하는 상황이 많다. 혹은 내가 다 견딜 수 있더라도 이 사람이어야 해, 하는 느낌이 없으면 그냥 다른 레즈 만나서 시작하는 게 쉽지.
그냥 애인 찾는 것도 힘든데 부가 조건이 너무 많이 필요한 거야.
예전 파트너에게 돔(Dom)이 필요하다고 했지만 잘 되지 않았다. 에셈은 파트너가 있어야 성립하는 '행위' 중심의 정체성이라 짝꿍을 만나는 게 중요하다.
에세머로서 서른 살이 되며 바뀐 게 있는지?:
몸이 안 좋아졌다. 목디스크도 왔고, 다양한 내장기관도 파업을 잠깐 했고. 그런데 이게 오히려 파트너(마님)를 더 이해하는 계기가 됐고, 상태를 더 쫀쫀하게 확인하게 됐다.
혹시 마님이 아프면서 말을 안 하는 건 아닐까 하며
20대들 사이에서 30대라는 게 가끔 눈치 보인다. 걔들 파티에 초 치는 게 아닐까 싶기도 하고.
줄을 다룰 때 확실히 예전보다 여유로워졌다. 전에는 숙련도를 높이기 위한 행위였다면 이제는 다르다.
전에는 무조건 '서스펜션!' 하며 달려갈 생각만 했지만 이제 줄을 하며 놀기도 한다.
요새 줄 관리한다고 하던데?:
스트레칭이 너무 힘들다.
유도를 하잖아? 어떻게 시작하게 됐나?:
2년 전, 엄마가 못하게 하는 운동을 해보고 싶어서 시작했다. 도복이 멋있기도 했다.
주짓수도 가 봤지만 처음에 친절하지가 않아.
유도를 배운 게 플레이에 미친 영향?:
상대를 메치고 누르는 감각이 생기면서 '헌터플'이 리얼하게 가능해졌다.
아무리 애를 써도 벗어날 수 없으니까 마님이 약올라한다.
본디지 상황에서 상대의 자세를 바꾸게 할 때 몸 쓰는 게 훨씬 편해졌다.
마님이라고 부르잖아. 처음부터 그렇게 불렀나?:
원래 닉네임이 있었는데 너무 입에 안 붙는 거야.
마님이라 부르기 시작하면서부터 주변 사람들도 마님이라 불러주기 시작하고. 뭔가 모시고 살아야 할 것 같은 본능적인게 많다.
귀여운 호칭인 거 같다. 돌쇠 포지션인 거잖아.
마님이라는 호칭을 쓰는 걸 보면 사람들이 '저 분이 바텀인가 봐' 하고 편하게 생각하기 쉽다. 그게 맞든 아니든. 보통의 에셈용어로 본다면 자신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자기주장 강한 바텀이자 마조히스트다. 마님이 새디스트적인 면을 맡아준다.
마님은 예전에는 에셈을 몰랐다고 했잖아. 처음에 마님이 뭐라고 하던가?:
마님에게는 사귀고 일주일 만에 성향을 통보했다. 그런데 피드백을 적극 반영해주고 유연하게 받아들줘.
지금 마님은 말초 님 생각에 에세머인가 아니면 에세머의 씨앗이 있는 사람인가?:
에세머다. 회초리 들고 와서 때리고 싶어하는데 에세머 아니면 뭔가.
마님을 에세머의 사회로, 오프라인으로 모시고 나오는 건?:
비에세머였던 마님을 에셈 사회로, 특히 줄 클래스로 모시고 오기까지 설득 과정이 힘들었지만, 지금 마님은 함께 즐기는 에세머다.
스팽킹 교류회도 어떤 계기가 된 듯하다. 그 전까지는 이걸 해도 되나 싶었던 부분들이 있었는데, 교류회에서 직접 보며 저기까지는 해도 괜찮은 거구나 하는 선이 생겼다.
서로 고마운 점을 말하는 '감사 시간'을 갖는다. 상대가 열린 맘으로 받아주는 게 당연한 게 아니고 고마운 거니까.
안정적인 관계가 흔치 않은데, 이런 시간이 큰 힘이 된다.
(소피) 귀엽다. 그런데 남자는 그렇게 하면 안 돼.
(타작) 왜?
(소피) 당연히 빨래랑 설거지는 남자가 하는 것이니까. 고맙기는.
내가 갖고 있는 욕망이지만 심지어 나 자신한테도 거짓말하거나 주변에 이것만큼은 말 못해, 라고 하는 마지막 로망/욕망/망상 뭐가 됐던 기저에 깔려 있는 가장 위험하거나 더럽거나 치사할 수도 있고, 그런 궁극의 어떤 것. 그런 게 있나?:
모두가 알고 있는데 마님만 모르는 게 있고, 마님은 아는데 다른 모두는 모르는 게 있다.
기본적으로 대부분의 것은 마님도 알고 있다. 마님이 알기만 해도 상처 받으실 것 같은 것들. 그건 마님이 모른다.
에세머로서 마음의 구멍, 결여가 있다고 느끼는 부분이 있나?:
지금은 없다. 너무 안정적인 관계를 이어가고 있어서 구멍이 느껴지지 않는다.
에셈 플레이가 없어서 구멍이 생긴다는 사람들은, 사실 그 원인이 에셈이 아니라 그냥 '지금 사는 게 재미없는' 게 아닐까 싶다. 결핍은 원인이 아니라 결과일 뿐이다.
재밌었다. 유쾌했다.
말초 님을 지하철역에 버리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아찐맨션의 타작과 소피는 말초 님과의 대화에 대해 대화를 나누었다.
아찐맨션

